연세대학교 백양로 _ 건축가 서동섭
지난한 설계 과정으로 편안함을 얻다
제 13회 Gansam Design Award 우수상 수상
연세대학교 재학생이나 동문들에게 있어서 백양로라는 장소가 갖는 의미는 상상 그 이상이다. 백양로는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 그 자체여서 학생들에게 캠퍼스의 추억이라 할만한 것은 고스란히 백양로에서의 추억을 의미한다고 보면 될 정도다. 이런 백양로를 재창조하는 프로젝트를 맞게 되었을 때 내가 느낀 부담감이란 유구한 역사의 캠퍼스를 변화시키는 민감한 작업이라는 부담감과는 또 다른 무게로 나에게 다가왔다.
백양로 프로젝트를 설계함에 있어서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조건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학생들이 늘 통행하는 길이기 때문에 공사 중에도 학생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지상에 통행로를 확보해줘야 한다는 점과 주변에 대강당, 백양관, 도서관, 학생회관, 제1 공학관, 백주년 기념관, 공학원 건물 등 총 7개의 건물에 인접한 상태에서 안전한 지하 굴착 공사를 해야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일반적인 흙막이 공법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방법이 다운워드 공법이었다. 지하의 최상부, 즉 지상의 바닥 구조를 먼저 만들어서 이 바닥을 이용해 학생들이 통행하고, 이 구조가 자연스럽게 측압을 견디는 흙막이 구조가 되도록 한 후 지하로 파 내려가는 방법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좋은 아이디어였으나 현실적으로 공사의 진행 순서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변수나 주변 건축물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봤을 때 이 방법이 과연 좋은 선택인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준공이 된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다소 불편하기는 했지만 공사 중에도 학생들이 계속 통행할 수 있었고, 터파기 공사가 끝난 후 기초부터 골조 공사를 하지 않고 파 내려감과 동시에 구조물 공사를 할 수 있어서 촉박한 공사 기간을 맞출 수 있었다. 역시 최선의 공법이었고,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여 현명하게 설계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어려운 조건이라면 백양로가 완만하긴 하지만 경사 지형이라는 점이다. 아마 백양로를 기억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길이 시작부터 끝까지 그저 평평한 길이라고 생각하겠으나 사실 백양로는 정문에서 본관 앞 삼거리까지 약 12미터의 레벨 차이가 있는 완만한 경사 지형이다. 건축 공간이 만들어지는 영역만 해도 길이가 약 360미터에 달해 약 8미터의 레벨차를 해결하는 방법을 건축 계획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지하층의 바닥을 지상의 지형과 같이 완만하게 경사진 바닥 구조로 적용할까도 고려했었지만 아무래도 안정감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닥을 평평하게 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단 차이를 형성하면서 경사 지형을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었다.
레벨 차이로 인한 설계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상에 푸른 녹지를 형성하기 위해 큰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토심을 최대 2미터까지 확보하고자 했는데 나무를 심을 부분의 레벨이 위치마다 달라서 나무 위치에 맞는 레벨을 반영한 구조 도면을 그려야 했다. 지상의 현황 레벨, 계획 레벨, 확보해야 하는 토심, 구조물의 레벨, 그로 인한 지하 공간의 천장고 확보 등 도면의 작성은 넓은 부지에서 복잡한 레벨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조건들 외에도 워낙 비중 있는 프로젝트다 보니 설계변경도 잦았다. 공사 중에도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디자인이 재검토되었고, 그로 인해 설계 변경 작업을 하면서 몇 달간 현장 사무실에서 상주하기도 했다. 그 외의 기간에도 일주일에 몇 번씩 학교에 가서 검토를 계속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의문이 남는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재검토가 이루어졌다. 준공하는 순간까지 설계 업무를 계속했다고 할 수 있다.
준공 이후 나는 학생들 틈에 섞여 백양로를 걸어봤다. 자동차도 없어지고 분위기도 달라진 듯 했지만 추억 속에 익숙한 백양로의 모습은 여전했다. 익숙한 듯 편안한 모습의 캠퍼스 풍경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복잡한 설계의 과정을 밟아 왔다. 설계는 어려웠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편하게 이용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프로젝트에 임하는 내 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