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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 디자인을 완성한 건축

 

건축에서 '새로운 것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아니라 '기존의 것을 어떻게 남기고 살려 나가는가'라는 논의는 앞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디자인 접근 방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비창조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스톡(Stock)을 축적해 간다는 것은 창발적 디자인 프로세스에 공헌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건축 표현의 한 형식으로 자리할 수 있다.

 

 

명동 70년의 기억을 옮기다
계성여고는 1944년 명동에서 개교한 이래 70여 년의 전통에 빛나는 명문 학교다. 그러나 명동지역의 도심 공동화에 따른 학령 인구 감소와 명동성당 특별계획 구역에 학교가 포함되어 이전사업이 추진되었다. 격변의 현대사와 함께했던 명동 교사(校舍)시절을 마감하고, 남녀공학 일반계 고등학교로 성북구 길음동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학교 이전과 남녀공학이라는 변화는 있어도 70여 년이라는 시간이 학교에 새긴 정체성은 깊고 짙었다. 계성고등학교가 가진 시간의 단면은 여전히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소중한 기억이었고, 우리가 구현할 디자인의 목적이자 본질이기도 했다. 계성고등학교 이전 프로젝트의 디자인 키워드(Keyword)는 시간, 기억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시간은 곧 기억이라고 했다. 기억한다는 것은 현재의 공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전이하는 행위이자 시간이라는 원추의 단면을 자르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70여 년이라는 시간의 단면을 통해 계성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우리가 찾은 기억의 테트리스
사람들은 디자인과 공간의 가치를 형태에서 찾아내는 경우가 많으나 건축의 본질을 계승하고 기본으로 돌아갈 때 더욱 풍부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1944년 근대부터 명동에서의 기억과 역사를 가진 계성고를 어떻게 계승하고 구현해야 되는지 고민하면서 우리는 먼저 모던(Modern) 디자인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명동성당 오른쪽에 위치한 계성여고는 붉은 벽돌 외관 그 자체가 가지는 단순함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붉은 빛으로 물든 교정은 가을이면 오색찬란한 단풍들과 조화를 이루며, 교목인 은행나무 아래에서 학생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쌓고 있었다. 축제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축제에 앞서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렸고, 미사가 끝나면 명동성당에서 와글와글 떠드는 여고생들과 그녀들을 제지하는 교사들의 고함소리가 난무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명동에서의 이같은 작고 소소한 이야기와 추억들이 길음동에서도 이어지고 기억되기를 바랐다.

 

기억의 공간, 공간의 기억
명동성당과 함께 상징적인 붉은 벽돌(Brick)과 아치(Arch)로 빚어낸 파사드 디자인은 학교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명동 교사(校舍)의 따뜻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를 바랐다. 우선 교사동의 창호 부분에 계성고만의 디테일(Detail)을 디자인해 깊고 담백한 맛을 부여하였다. 디자인 접근 방식은 벽돌의 물성을 최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였고, 깊이감(Depth)을 구현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우리는 외부에 면하는 바깥 면에서 창호 시스템이 만나는 지점까지 벽돌을 2번 접게 했고, 이렇게 구성된 창호 부분은 일정한 모듈(Module)로 구성된 학교에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멋진 패턴을 완성하게 되었다. 특히 교사동 우측 면의 벽돌을 사선으로 마감하여 깊이감을 극대화한 디자인은 기존의 명동성당과 함께하며 파생된 가톨릭 정신의 근엄한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었다. 아울러 다목적강당(샛별관)의 아래 부분은 고딕풍의 아치로 구성해 마치 걷고 싶은 가로수길 느낌의 분위기를 조성해 계성고만의 특색을 나타낼 수 있도록 했다.

 

명동 계성여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학교 뒤뜰계단을 잊지 못한다. 성모의 밤 행사가 벌어지던 장소였고, 친구들과 졸업사진을 찍을 때면 언제나 배경이 되는 곳이었다. 오랜 추억이 깃든 명동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기는 어려웠지만 길음동 현 사이트(Site)에 단차를 최대한 활용한 중정 계획을 세워 시간의 단면을 재구성해 보고자 하였다. 중정에 계단(Stair)을 사용해 뒤뜰의 돌계단을 떠올리게 했고, 단순한 형태의 스탠드(Stand) 방식이 아닌 중간 중간에 플랜터 박스(Planter Box)와 벤치(Bench)를 두어 학생들과 교사들의 커뮤니티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 중정 계단은 ㄷ자 형태의 교사동 내·외부를 연결해 학교 전체의 동선흐름이 끊기지 않고 연속될 수 있다. 이외에도 전통을 보존하되 신축 학교에 걸맞게 밝고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려 노력했다. 교사동 1층에는 2개 층이 오픈된 로비를 구성하였고, 로비와 중정이 면하는 부분은 전면 유리로 마감해 내·외부가 밝고 확트인 시야가 확보되는 공간으로 계획하였다. 또한 중정을 배경으로 한 로비에는 역사관 및 경당으로 사용되는 원형의 오브제(Objet)가 있는데, 이곳은 계성고의 역사와 전통을 음미하면서 사색을 즐기기에 손색없는 공간이다.

 

기억으로 디자인을 완성한 건축
계성고 교사 이전 프로젝트는 새로운 학교시설 기준인 교과교실제에 적합한 ㄷ자 배치와 교실간 소음을 고려한 편복도, 채광과 환기의 우수성을 확보하기 위한 남향 배치를 통해 시대적 변화를 고스란히 수용하기도 했다. 학년별로 교과교실을 배치하여 교사와 학생 모두 편하게 이용하게 했고, 동일 교과군을 인접 배치했으며, 홈베이스 및 러닝스페이스를 계획하여 원활한 학습 환경을 조성하였다. 특히 일반교실은 7.8x7.8(m)모듈을 사용하여 학급당 인원수 25명 기준에 맞추어 1인당 2.4㎡(각론 : 1인당 1.4㎡)의 합리적이고 여유로운 면적 계획을 세웠다.

 

건축에서 새로운 것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아니라 기존의 것을 어떻게 남기고 살려나가는가라는 논의는 앞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디자인 접근 방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비창조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스톡(Stock)을 축적해 간다는 것은 창발적 디자인 프로세스에 공헌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건축 표현의 한 형식으로 자리할 수 있다. 계성고등학교가 오랜 역사를 이어받아 더욱 발전할 수 있고, 학생들이 더 많은 추억을 쌓으며, 지역 사회도 만족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대지위치 서울특별시 성북구 길음동 1284-15
용도 교육연구시설
대지면적 15,000.10㎡
전체연면적 19,618.76㎡
건폐율 25.90%
용적률 106.55%
규모 6F, B1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
책임건축가 오동희
PM 박성범
설계참여자 구겸모, 윤새봄, 최수영
건축주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시공사 (주)평화종합건설
사진 이우헌

 

     건축가 최수영
    
[email protected]
     2011년 간삼건축 신입공채 입사.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말을 좋아하며 실천해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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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blished

    March, 2017 / vol.45
  • Main theme

    Educatiion Fac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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