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의료 플랫폼 시대의 변화와 과제
건축가 이태민
플랫폼(Platform)으로서의 의료시설
하나의 제품과 서비스를 누구나 동일한 목적으로 소비하던 시대에서 스마트폰처럼 하드웨어는 고정되어 있더라도 어플리케이션의 변화에 의해 개인마다 다른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대, 맞춤형 컨텐츠를 통해 개인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의료시설도 예외가 아니어서 사람들의 변화하는 니즈를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 의료시설이 일종의 플랫폼(Platform)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는 좋은 의료시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질문에 대한 유력한 해답이 될 수있다.
최초의 병원은 치료 행위를 위한 공간과 의료진을 위한 공간, 그리고 의료 행위를 지원하는 공간의 확보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복잡해진 의료 행위는 대규모 기계장치와 같은 수많은 기술적 장비의 도움을 받는 시대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각 실들은 서로 복잡한 상관관계와 특수한 설비 환경으로 인해 의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원활히 대응하지 못하는 물리적 한계를 갖게 되었다. 새로운 장비로의 교체, 치료 환경에 따른 변경, 의료 수요에 따른 변경 등 그간 학계의 연구 결과는 대다수의 대형 종합병원들이 신축한 지 3년 이내부터 지속적으로 내부 변경을 거치고 일정 기간, 대략 15~20년에 도달해서는 대규모의 중축과 리모델링을 거친다는 의미 있는 통계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병원을 지은 후 시설을 사용하면서 현장을 조율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료 행위 자체의 변화가 그만큼 급변하는 데 원인이 있다. 이는 미래의 예측과 기획의 잘못이 아닌, 변화 자체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의료시설의 설계는 특수 해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러한 변화에 쉽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즉 어떠한 의료 서비스가 요구되든 간에 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기계적 설비까지 보다 쉽게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전의 가변성은 병원을 다른 실로 변경이 유리한 모듈의 연구에 한정되어 적용되어 왔다. 오히려 장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병원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방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닌 고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해 이러한 실의 변경을 최소화하면서도 새로 추가되는 실을 확보해야 하는, 또는 해당 변경이 필요한 부분만을 변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단순한 스페이스 확보에서 어떤 위치에 어떠한 조건의 스페이스를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가변성의 관점은 병을 치료하는 방법과도 유사하다. 몸의 다른 부분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취약한 부분만을 국소적으로 치료하는, 또는 개선하는 개념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규모의 성장과 함께 함께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어떻게 하면 의료 행위의 중단 없이 더 쉽게 병원 시설을 증축하는 방법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를 거쳐, 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시설 규모의 변경 없이도 그 성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같이 모색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불확실한 미래에 같은 문제에 직면할 경우를 대비한 방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견 의사 결정이 어려워 보이기는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미래의 변화가 있을 것을 감안한다면 그 해답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메르스, 그 후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의료시설은 또 한번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병원에 가서 병에 걸리는 확률이 일상생활에서 병에 걸릴 확률보다 더 높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효율을 중시하여 전문적인 분야를 묶어 두었지만 오히려 이는 병원균에 노출될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교차오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환자와 의료진 및 보호자를 위한 투자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고비용과 효과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다음에 소개하는 나름 최근의 몇몇 병원의 사례와 같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일보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다. 특히 세브란스 응급의료센터 사례와 같이 갖가지 특수 상황에 따른 변화까지도 효율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방법은 앞으로 만들어지는 유사 시설의 표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치료에서 치유로
현대의 의료 기술은 감성이 덧입혀져 치료에서 치유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중이다. 사람의 마음까지 다루는 의술로의 관심은 문제 해결의 중심에서 보다 근원적인 치료에 접근을 도모하는 동양사상과 맞닿은 것으로 보인다. 질병을 정의하는 범위 또한 더 이상 물리적 범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치유 환경의 계획은 사람의 마음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또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사람의 욕구를 반영하는 일이기도 하다. 세브란스 병원의 페이션트 라운지와 같이 감성이 덧입혀진 시설들은 새로운 병원의 트렌드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교차감염 예방의 관점에서 병문안 문화는 의료 선진국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처럼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환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하므로 또 다른 공간의 구축을 요구하게 됨을 의미하며, 불가피한 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수요로의 기회 요소로 활용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생하는 모델로의 의료 서비스 집합체
우리나라의 중소 병원들도 적자를 내고 도산하는 시대로 진입하였다. 대형 병원으로의 집중 현상은 빈익빈 부익부를 연상하게 한다. 의료 행위가 사회 복지의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일반 서민을 위해 의료 비용을 줄이는 국가적 노력은 병원 자체가 적정한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게 된다. 자구하기 위한 병원은 비용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단 몇 분만에 외래 환자를 봐야 하는 종합병원의 의료체계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문제와 다소 이율배반적이다. 따라서 의료 행위 자체만이 아닌 병원의 수익 다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병원의 일일 내원객 수를 감안할 때 대형 종합병원은 동시에 상재하는 수많은 다양한 소비자를 지닌 하나의 소규모 도시와도 같다. 이러한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면 다양한 편의시설과의 융합은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의료 외적 수익을 의료 서비스의 향상으로 다시 기여하게 만드는 구조가 되는 것 또한 하나의 화두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또 다른 화두는 하나의 클러스터의 개념으로의 변화이다. 의료 기술의 연구 및 개발, 표준을 만드는 작업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소비처와 생산자, 연구자가 동일 루프상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분야의 융합은 선순환되는 구조를 갖게 된다. 의료 산업의 소비자가 의료시설이고 다시 의료 산업의 발전을 연구하고 확인하게 되는 장소 또한 의료시설이기 때문이다. 분당 서울대학병원의 메디컬 클러스터와 같이 최근의 대형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이러한 노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새로운 의료시설을 제시하며 여기에 소개되는 병원들은 간삼건축의 의료시설에 대한 새로운 노력들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의료 행위에 집중하는 시설에 리조트, 연구소, 산업시설, 혹은 거대한 기계와 같은 시스템이 감성 디자인으로 덧입혀지고, 아울러 수익 구조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검증되고 공유되어지며, 전반적인 우리나라 의료시설의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건축가 이태민 (주)간삼건축 설계2부문 CDO/부사장
다양한 장르의 설계를 담당하였지만 특히 연구소, 공장 및 의료시설 건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통합형 건축가이다. 주요 작품에는 은평성모병원, 가천대 길병원 암센터, 명지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HRD센터, 강남 성모병원 마스터 플랜, 장애인 종합체육시설, 설악 소라노 한화리조트, 동해시 ANVA EXPO 전시관, 태국 적십자 PFP, 셀트리온 송도 2단계 프로젝트, 대한생명 일산사옥, LG생명과학 오송캠퍼스, 타워호텔 반얀트리 클럽앤스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