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센트로폴리스
건축가 오동희
21세기를 맞이한 지도 벌써 20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엄청난 변화를 겪은 우리 사회는 미시적으로 많은 부분의 사고 방식과 사회를 구동시키는 시스템의 변화가 부단히 진행되고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창의적 혁신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도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의 미시적 체계와 법적인 조건, 영향력에 있어서 부단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큰 틀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건축가로서 마음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사라고 하는 좀 더 긴 시간성의 관점에서 도시는 그러한 미시적인 부분의 집합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장소로서의 건축, 센트로폴리스
마치 그리스 시대의 어느 장소를 연상시키는 이 건축물은 사실 건축이라기보다는 도시의 한 장소로 읽혀지기를 바랐습니다. 세계 여러 도시마다 도시를 대표하는 특정 장소가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하나의 장소가 도시 조직 안에 자리잡게 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로, 그것도 인사동 초입에 위치한 높이 114미터에 달하는 건물, 그리고 4만 2천여 평에 이르는 대규모 도시 건축이 이 장소에 어떻게 끼워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건축가로서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길 하나 건너에 지어진 청진지구의 여러 빌딩 군의 하나로 인식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이 프로젝트는 땅이 주는 울림과 소리에 기인한 새로운 숙제를 안은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 숙제는 종로통의 대장 격으로 오랜 세월을 지켜온 종로타워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대립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관계적 합을 통한 시너지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 숙제는 사람을 위한 도시 공간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적인 공간인 건축물과 공적인 공간인 보행 공간이 이제는 건물 안으로 침투해 입체적으로 구축되면서 과거 기업의 로비 공간 Coporate lobby이 이른바 도시의 길 Urban street로 입체적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누구에게나 개방된 길이 건물 내부로, 또 지하 공간으로 침투해 서로 교류하는 장소로 창조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단순성과 실용성
한편 최근의 디지털 혁명, 인공지능의 세계와 그 사고방식의 흡수 체계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한 시대를 주도하고 또 명백하게 규정할 수 있는 철학적인 사상이 존재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웹으로 규정된 통(通)공간성과 통(通)시대성에서 비롯된 것인데, 사람과 정보의 이동성이 확대되며 생긴 수많은 교류가 전세계의 다양한 가치를 보편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한편 현재 세상을 주도하는 가치, 또는 트렌드가 금세 다른 가치에 흡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현대사회는 다중적이며 복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센트로폴리스의 철학적 배경도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세계에 대한 건축관을 표출하는 것이 되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단순성과 실용성을 풀어내는 것으로 그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마치 대립하고 있을 것 같은 다중성, 복합성의 가치를 오히려 통합하고 흡수하는 개념의 단순성, 실용성이라는 키워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관점은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볼 때 합을 이루는 것일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센트로폴리스는 두 개의 단순한 매스로 구성됩니다. 그것은 앞서 설명한 도시의 맥락과 시대적 가치의 해석을 단순성으로 풀어내기 위한 도구입니다. 아울러 이것은 인사동의 초입에 위치한 장소에 대한 도시적 해석의 결과이자 종로타워라는 거대한 골리앗에 대한 대립을 통해 도시의 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종로타워가 남성이라면 센트로폴리스는 여성이라는 개념으로, 또는 그 반대의 개념으로 설정되도록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건물의 물리적인 크기가 끼치는 도시적 영향력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하기 힘든 고민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팀은 제법 많은 계획안을 검토하고 또 검토했습니다.
함께 참여한 smdp의 스캇 Scott은 한국적 전통을 여러 모티브를 통해 이해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는데 이는 비록 거대한 매스지만 인사동의 배경으로서 병풍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비교적 경관적인 건축물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 그중에서도 종로지역이 가지고 있는 맥락을 잘 흡수하면서 이 건물로 인해 도시의 새로운 거점이 만들어지도록 단순해 보이지만 많은 장면을 내포하게 했고 보수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도시 패턴을 제공함으로써 밤이 되면 도시의 등대 Urban lighthouse처럼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로 역할하도록 했습니다.
센트로폴리스는 진행 과정에서 도시 유적이 발견돼 또 다른 전기를 맞게 됩니다. 문화재 발굴과 보존을 위한 기존 방식과는 다른 서울시의 요청은 사업 주체에게는 무척 곤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서울시와 사업자, 그리고 건축가와 서울역사박물관이 협력해 이룬 이른바 공평동 룰에 의해 바로 이 장소에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자리잡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많은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찾고 싶은 장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센트로폴리스는 그 시작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11년에 걸친 설계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장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세 번에 걸친 대대적인 설계 변경과 그때마다 설계자로서의 지위를 놓지 않으려고 했던 마음의 빚을 이제는 그분들에게 감사함으로 돌리게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건축가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배려한 시티코어의 이진호 대표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새로운 장소가 서울에 들어서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사회적인 힘을 모아주신 박원순 서울시장님과 승효상 총괄건축가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 센트로폴리스는 건축가의 손을 떠나 진화하는 도시 속으로 안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건축물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바라며, 방문자들을 적극적으로 만족시키는 세련된 건물 운영도 기대합니다. 사람과 건축물의 다이얼로그 Dialogue를 통해 건축물은 장소의 진화를 이루고, 이것은 다시 우리에게 의미 있는 변화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오동희 건축가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포스코센터 설계를 통해 국내 첨단 오피스빌딩 건축의 차원을 한 단계 높였다. 대표작으로 한국은행, 라마다 프라자 제주호텔, 유니온스틸 사옥, 포스코 역사관, 포스코 건설 송도사옥, 채드윅국제학교, WBC, 해운대 위브더제니스, 카사델아구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