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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에 대한 소회

조학문 現 대치성당 주임신부 前명동성당 관리국장

1. 명동성당 종합계획1단계가 완성되었습니다. 먼저 계획을 마무리 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A. 오랜 기간 숙원이었던 프로젝트였고,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함께 했지만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2014년 8월 프란체스코 교황님 방문 당시 저는 명동성당의 관리국장이었고, 교구청에 근무하여 교황님
을 직접 뵈올 수 있는 영광을 맞이하였습니다. 교황님은 머릿돌 축성식 때 사인과 함께 직접 글을 적어주셨는데,
그것이 명동성당 1단계 프로젝트의 완성을 의미했습니다. 실로 감개무량한 순간이었습니다.

2. 명동성당 [1단계] 계획을 추진하는데 있어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A. 명동성당은 지난 세월 동안 개발을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계획이 물거
품이 되곤 했는데, 과거의 축적된 의견들을 종합하여 기본계획안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것은
워낙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는 과정 자체였습니다. 또한 각기 주장을 내세우
긴 하지만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곤 했습니다.

3. 명동성당 [1단계] 계획을 통해 개선되기를 원했던 공간은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A. 명동성당 1단계 계획은 명동대성당 본당 권역을 보존하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이에 따라 지하 주차장을 조성
해 주차공간 부족 문제와 차량들의 명동성당 마당으로 진입으로 인한 성당 훼손을 방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
한 본당을 대신해 각종 미사와 집회, 결혼식 등을 치를 파밀리아 채플을 만들어 본당의 부담을 장기적으로 줄여
나가고자 했습니다. 중앙광장의 진입로는 초창기의 원래 모습을 유지하되 현대화하길 원했고, 마을광장은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으로써 간접적으로 선교되는 효과를 기대하며 계획한 곳입니다. 그리고 가톨릭회관 1층과 2
층을 리모델링하여 종교서적과 성물판매 등 천주교 관련 종합 매장들을 한 데 모으고, 1898광장에는 가능한 종교
적 색채가 없는 시설들로 채워 모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만남을 유도했습니다.

4. 교구청 신관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A. 신축된 교구청 신관은 명동성당의 미래 비전을 위해 추기경님과 주교님의 뜻을 모아 건축을 계획하였습니다.
미래의 서울대교구의 헤드쿼터이면서 교구장님의 지시에 의해 교육공간으로도 배려하여 예비 신자들을 위한 교
육의 장으로써 교리 수업을 받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본당을 가린다는 이유로 여러 심의를 거치며 심의
때마다 한층씩 삭감하여 12층으로 계획되었던 건물 규모가 10층으로 수정되었지만 직접 보면 어디서 봐도 가리
는 곳이 없습니다. 준공 후에 많은 분들의 의견처럼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주변과 동화되어 자연스
럽게 보인다는 것이 이 건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5. 명동성당 [1단계] 계획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습니다. 최근 사람들의 반응이 초기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했다
고 들었는데,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들어주십시오.
A. 공간 <1898광장>은 명동대성당이 세워진 1898년과 5개의 원과 2개의 선으로 이루어진 ‘ 오병이어 (五餠二
魚)’, 즉 ‘나눔’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곳에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공간은 ‘한마음한몸운동의 장기기증센터’
외에는 없는 듯합니다. 단지 사람들이 아무런 종교적 의미나 부담을 갖지 않고 성당으로(천주교로)들어오게 하
는 관문의 장소일 뿐입니다. 이 곳에서 신자와 비신자 구분 없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인식
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명동성당을 오르내릴 때 주변이 개방되어 있어 성당을 바라보는 모습이 아름답고 다시 찾
고 싶어하는 공간이라고 칭찬합니다. 저도 신자들과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1898 광장>이 가장 마음
에 듭니다. 특히 지하느낌이 나지 않도록 천정의 형태와 조명에 포인트를 주어 밝은 광장이 된 것 같아 흡족합니
다.

6. 그에 반해 [1단계] 계획 중 아쉬운 점도 있을텐데요.
A. 성모동굴입니다. 예전에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였지만 현재의 위치는 돌아서 찾아 들어가야 하며 기도하
려고 마음먹어야 그 공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성모동굴의 위치를 결정하기까지 여러 번 이동이 있었고, 또
지금의 장소가 많은 신자들은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장애인이 좀 더 쉽게 명동성당
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되돌아보면 그 당시에는 여러 의견을 충분
히 수렴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마저도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의견을 수렴했더라면 하는 아
쉬움이 남습니다. 끝으로 주변의 나무숲이 아직 덜 자란 점과 조경이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으나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꾸준한 관리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7.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이후 2, 3, 4단계가 남아있습니다. 명동성당의 미래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신
부님께서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A. 미래에도 명동성당 주변의 모든 시설들이 지금처럼 조화를 이루었으면 합니다. 다만, 시설 확충은 많은 사람
들의 복합적인 판단이 작용하므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충분한 논의를 바탕으로 계획하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 4단계로 계획되어 있는 가톨릭 회관은 명동성당 본당을 기준으로 비켜서 옆으로 틀어져 위치해 있는데,
이것을 두고‘문화재 등재’라는 보존의 입장과 반대인 철거로 양쪽 학계의 바라보는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이것
역시 시대가, 혹은 관계자들이 현명한 결정을 하리라 믿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추후 계획에서 바람이라면 여러
방향에서 명동성당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지향했으면 합니다. 지금은 명동성당의 넓은 부지에 비해
진입로가 정문 하나여서 접근하는데 아쉬움이 많습니다.

8. 끝으로 명동성당을 이용하게 될 천주교인들과 시민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천주교 신자들과 시민들은 명동성당을 종교적인 시설과 역사의 현장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명동성당
올라가는 아트리움에 정호승 시인의 명동성당이란 시의 글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아버지를 잃은 아버지가 찾
아와 무릎 꿇는 곳, 종을 잃은 종소리가 영원히 울려퍼지는 곳...’에 저의 바람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
로 화합하게 되고, 서두를 것이 없어지며, 갈등도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이제 명동성당 종합계획은 1단계를 마쳤
을 뿐입니다. 교회나 시민들, 그리고 정부도 명동성당을 보존해야할 문화재로써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한다면 좀
더 희망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조 학 문 바오로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대방동성당, 명동대성당에
서 보좌신부로 재직하였고, 본당 신부로서 공항동성당, 신정동성당, 미주필라델피아한인성당, 길동성당, 아현동
성당에서 사목을 하였다. 1998년부터 5년간 여의도 성모병원, 가톨릭 중앙의료원에서 병원 행정업무에 참여하였
으며, 공항동성당을 신축할 당시에는 정기용 건축가와 함께 성당 신축을 했었다. 그는 1987년부터 현재까지 교구
건축위원으로서 교회건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2007년부터 천주교 서울 대교구 관리국장으로 근무하며
명동성당 종합계획[1단계]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많은 의견과 도움을 주었다. 현재는 대치동성당의 주임신부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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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blished

    June, 2015 / vol.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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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ligious Fac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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